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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로서 역신(疫神)을 물리친 <처용가(處容歌)>


오늘 개운포(開雲浦)는 비에 젖어 있다.
조금씩 안개가 흩날리기도 하며, 시커먼 검은 구름이 낮게 포구(浦口)를 감싸고 또 한 번 동해용왕(東海龍王)의 아들을 친견(親見)할 것 같은 예감(豫感)탐방자(探訪者)의 눈알은 재빠르게 사방(四方)을 살피면서 두리번거린다.


울산 개운포의 처용암이 조용히 물 위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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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釜山)을 출발하여 덕하를 조금 지나니 처용(處容)사거리가 나온다.
처용로(處容路)명명(命名)하여 제법 깔끔히 단장(端裝)하고서 탐방객(探訪客)을 맞이한다.
주변(周邊)용연공단(龍淵工團) 공장(工場)들의 굴뚝이 하늘을 향해 마천루(摩天樓)로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다.
커다란 유류저장고(油類貯藏庫)()이어 있어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수연(水蓮) 잎이 물위에 떠 있는 형상(形象)일 것 같다.
SK주식회사(株式會社) 정문(正門) 앞에서 좌회전(左回轉) 하여 4킬로미터 거리에 동해용왕(東海龍王)현신(現身)하였다는 처용암(處容巖)이 물위에 떠있는 조그만 배처럼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녹음(綠陰)이 2차선 처용로(處容路)를 아름답게 장식(裝飾)하면서 사열(査閱)하는 듯 한 모습을 보니, 문득 헌강왕(憲康王 : 875~886)이 서라벌(徐羅伐)에서 이곳까지 찾은 이유(理由)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의문(疑問)이 일기 시작한다.


처용암 앞에 세워진 처용가 향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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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主人公) 경문왕(景文王 : 861~875)의 태자(太子)왕위(王位)에 오른 신라(新羅) 49대 헌강왕(憲康王)시절(時節)은 매우 태평(太平)하였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다음과 같이 ()한다. www.pjnonsul.com
   ‘서울의 민가(民家)는 즐비하게 늘어섰고, 가악(歌樂)의 소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시중(侍中) 민공(敏恭)에게 말하기를 “내 들으니 지금 민간(民間)에서는 집을 기와로 덮고 짚으로 잇지 아니하며, 밥을 짓되 숯으로 하고 나무로써 하지 않는다 하니 사실이냐”고 물었다.
민공(敏恭)이 대답하기를 “()이 또한 그와 같이 들었습니다.”하였다. www.pjnonsul.com
   우리는 여기서 위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記錄)을 다시 한 번 되새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부왕(父王)경문왕(景文王) 6년 10월 이찬(伊湌) 윤흥(允興)모반(謀叛) 사건(事件)이 일어나고, 8년 이찬(伊湌) 김예(金銳) 등이 모반(謀叛)하다가 주살(誅殺)되었으며, 14년 이찬(伊湌) 근종(近宗)모반(謀叛)하여 대궐(大闕)()사건(事件)이 벌어지는 등 ()이은 모반(謀叛) 사건(事件)으로 왕위(王位)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위태(危殆)로운 지경(地境)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처용암 주변의 조성하다가 그만둔 듯한 이상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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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와중(渦中)태자(太子)로 있으면서 모반현장(謀叛現場)을 낱낱이 보면서 자란 헌강왕(憲康王)특단(特段)조치(措置)를 내려 왕권(王權)강화(强化)하였다고 추측(推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헌강왕대(憲康王代)역사기록(歷史記錄)에는 아무런 단서(端緖)포착(捕捉)되지 않는다.
다만 헌강왕(憲康王)서라벌(徐羅伐)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다니며 포석사(鮑石祀)남산신(南山神), 금강령(金剛嶺)북악신(北岳神)-옥도령(玉道令)-, 동례전연회(東禮殿宴會)에서 지신(地神)의 춤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였는데 ()만 보았다하여 왕권(王權)신성성(神聖性)을 높이려고 했을 따름이었다.
헌강왕(憲康王)이 이곳 개운포(開雲浦)를 찾은 것이 바로 이때였다.
나라 안 효험(效驗) 있는 산신(山神) 지신(地神)께 모두 치성(致誠)을 드려보아도 아무런 효과(效果)가 없자 헌강왕(憲康王)은 마지막 히든카드로 동해용왕(東海龍王)이용(利用)하여 위기(危機)를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이 훨씬 설득력(說得力)이 있는 것이 아닐까. www.pjnonsul.com
   47대 헌안왕대(憲安王代)화랑국선(花郞國仙)으로 ()의 사위가 된 응렴(膺廉)이 곧 경문왕(景文王)이다.
역사가(歷史家)들은 신라(新羅)는 36대 혜공왕(惠恭王)대부터 하대(下代) 혼란기(混亂期)시작(始作)되었다고 한다.
딸로 태어날 운명(運命)표훈대사(表訓大師)의 도움으로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부터 약화(弱化)왕권(王權)상징(象徵)한다고 해도 무방(無妨)하다 하겠다.
또한 화랑(花郞) 풍월주(風月主)를 지내고 왕위(王位)에 오른 첫 주인공(主人公)이 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다.
그리고 31대 신문왕(神文王) 원년(681)에 화랑(花郞)폐지(廢止)되어 더 이상 화랑(花郞)정치(政治) 전면(政治全面에 나타나지 않고 사라진다.
그러나 위에서도 살폈듯이 응렴(膺廉)은 헌안왕(憲安王 : 857~861)의 못생긴 첫째 딸과 결혼(結婚)함으로서 화랑국선(花郞國仙) 출신(出身)으로 왕위(王位)에 오르게 된다.
오랫동안 사라졌던 화랑국선(花郞國仙)역사(歷史)전면(前面)에 다시 등장(登場)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헌안왕(憲安王)혼란(混亂)국내정세(國內政勢)삼국통일(三國統一)정신적(精神的) 구심점(求心點)화랑국선(花郞國仙)이용(利用)하여 바로 잡으려고 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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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강왕(憲康王)개운포(開雲浦)를 찾아 동해용왕(東海龍王)의 아들 한명을 서라벌(徐羅伐)로 데려가서 왕정(王政)보좌(輔佐)하게 한다.
이가 바로 처용(處容)이다.
헌강왕(憲康王)은 생긴 모습이 여느 서라벌(徐羅伐) 사람과는 다른 처용(處容)동해용왕(東海龍王)의 아들이라고 하여 신이성(神異性)부여(附與)하고, 처용(處容) 역시 역신(疫神)침범(侵犯)용서(容恕)의 춤으로서 굴복(屈伏)시키니 서라벌인(徐羅伐人)들의 경외심(敬畏心)을 불러일으키기에는 가장 적합(適合)방법(方法)이었을 것이다. www.pjnonsul.com
   처용(處容)역신(疫神)이 아내를 ()하는 장소(場所)에서 불렀다는 노래가 <처용가(處容歌)>이다.
현대어(現代語)로 풀어보면 아래와 같다. www.pjnonsul.com
  
서라벌 밝은 달에, 밤 새워 노니다가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고   二肹隱吾下於叱古 二肹隱誰支下焉古
본디 내 것이다만은,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꼬.  奪叱良乙何如爲理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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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를 부르며 덩실 덩실 춤을 추는 처용(處容)을 보고, 역신(疫神)은 꿇어 앉아 “맹세코 ()형용(形容)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한다.
이때부터 서라벌인(徐羅伐人)들은 처용(處容)형상(形象)()에 붙여 사귀(邪鬼)를 물리쳤다고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기록(記錄)하고 있다. www.pjnonsul.com
   『고려사(高麗史)』에는 간략(簡略)처용(處容) 출현배경(出現背景)을 적고, 익제(益霽) 이제현(李齊賢 : 1287~1367)의 한시(漢詩)로서 처용(處容)형상(形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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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옛적에 처용 노인   新羅昔日處容翁
저 바다 물 속에서 왔다 하네.   見說來從碧海中
자개 이빨 붉은 입술로 달밤에 노래 부르며   貝齒赬脣歌夜月
소리개 어깨, 자주색 소매로 봄바람 맞아 휠훨 춤추었다.
  鳶肩紫袖舞春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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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처용(處容)조선시대(朝鮮時代)에 와서도 『악학궤범(樂學軌範)』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에 실려서 궁중연향(宮中宴響)에서 기녀(妓女)들이 <처용가(處容歌)>를 부르고, 오방색(五方色) 옷을 입은 처용무희(處容舞姬)현란(絢爛)한 춤을 추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朝鮮時代) 사용(使用) 악보(樂譜)인『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잡처용(雜處容)>이란 이름으로 실려 있기도 하다. www.pjnonsul.com
   이처럼 처용(處容)역사(歷史)를 거듭하면서 다시 재탄생(再誕生)되었으며, 영원(永遠)벽사진경(僻邪進慶)존재(存在)로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개운포 성지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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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조선왕국(造船王國) 울산(蔚山)에서는 처용문화재(處容文化財)거창(巨創)하게 열리고 있다.
그러나 처용암(處容巖) 유적지(遺蹟址)에는 달랑 비석(碑石)하나가 전부(全部)이고, 조잡(粗雜)하게 조성(造成)하다만 주변(周邊)형형색색(形形色色)의 접시꽃이 왜 그리 많은지 탐방자(探訪者)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지역(地域)문화수준(文化水準)짐작(斟酌)하게 한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表現)일까. 조금 떨어진 ‘개운포성지(開雲浦城址)’는 바로 앞에 6차선 조선왕국도로(造船王國道路)가 나면서 아예 이곳에서 처용암(處容岩)을 보는 것조차 불가능(不可能)하다.


신라 38대 원성왕릉으로 알려진 괘릉의 무인석. 처용을 새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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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줄기가 애잔하게 떨어지는 처용암(處容岩)을 돌아 개운포성지(開雲浦城址)흔적(痕迹)을 밟고 있는 탐방자(探訪者)의 머리는 온갖 안타까운 상념(想念)으로 넘쳐나고, 무너진 성벽(城壁)무표정(無表情)하게 내리는 비를 가림 없이 온전하게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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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한자
1.親見  2.豫感  3.處容  4.命名  5.周邊  6.工場  7.形象  8.現身  9.裝飾  10.疑問  11.太子  12.新羅  13.太平  14.記錄  15.父王  16.謀叛  17.事件  18.大闕  19.危殆  20.地境  21.渦中  22.措置  23.王權  24.推測  25.端緖  26.捕捉  27.名山大川  28.地神  29.效驗  30.山神  31.致誠  32.效果  33.危機  34.始作  35.運命  36.弱化  37.象徵  38.無妨  39.花郞  40.廢止  41.政治  42.結婚  43.登場  44.王政  45.附與  46.疫神  47.侵犯  48.容恕  49.屈伏  50.適合  51.方法  52.場所  53.形容  54.簡略  55.妓女  56.絢爛  57.使用  58.存在  59.碑石  60.全部  61.造成  62.地域  63.斟酌  64.表現  65.痕迹  66.想念  67.城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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