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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 원화의 원류(原流) 박제상 부자(父子) 上


연일(連日) 찔끔 비가 봄을 부르고 있다.
시냇가 버들가지에는 버들강아지가 뽀얀 입술을 살포시 내밀고 어리둥절 계절(季節)을 엿보고, 이젠 얼음이 풀어진 비단 같은 맑은 물은 제법 봄꽃을 흥분(興奮)시키고 있는 듯하다.
산수유 핀 골짜기는 백매화(白梅花)만발(滿發)하고, 홍매화(紅梅花)마저 참았던 기지개를 켜면 나리 나리 개나리♬ 놀라서 숨 멈추고, 목련꽃 향연(饗宴)을 벚꽃과 함께 다가서면서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시샘 한기(寒氣)를 보내어도 계절(季節)은 꿈쩍없이 그 길을 간다.
오늘은 계절(季節)화랑(花郞)답다.


매화의 순결함이 충신 박제상을 닮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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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新羅)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歷史)에서 만고(萬古)충신(忠臣)으로 추앙(推仰)을 받는 이는 박제상(朴堤上: 363-419)이 유일(唯一)할 것이다.
그는 신라(新羅)시조(始祖) 혁거세(赫居世)후손(後孫)으로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5대손이며, 조부(祖父)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요, 아버지는 물품(勿品) 파진찬(波珍湌)이라고『삼국사기(三國史記)』는 ()을 세워 ()한다.
또한 영해박씨의 실질적(實質的) 시조(始祖)라고 하며, 이 문중(門中)에서 간직해온『부도지(符都誌)』는 박제상(朴堤上)이 지은 그의 사상서(思想書)라고 해도 무방(無妨)할 듯싶다.
물론 우리나라의 식자(識者)들은 새로운 책이 나타나면 일단 위서(僞書)라고 지목(指目)하고 쳐다보지도 않지만 말이다.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효충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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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삽량주(歃良州)-지금의 경남 양산- ()으로 있기도 하는데, 이보다 앞서 실성왕(實聖王) 원년(元年 : 402)-『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내물왕(奈勿王) 36년(390)으로 기록되어 있다-에 ()와의 강화정책(講和政策)으로 내물왕(奈勿王)의 셋째 아들 미사흔(未斯欣)-『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미해(美海)-을 볼모로 보내고, 뒤이어 高句麗와의 강화(講和)동왕(同王) 11년(412)』에는 눌지왕(訥祗王) 3년(419)의 일로 기록(記錄)되어 있다-에 내물왕(奈勿王)의 둘째 아들 복호(卜好)-『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보해(寶海)-를 볼모로 보내게 된다.
후일(後日) 왕위(王位)에 오른 눌지왕(訥祗王)-내물왕의 첫째 아들-의 왕명(王命)을 받은 제상(堤上)은 먼저 고구려(高句麗)로 가서 복호(卜好)를 구하고 돌아왔으나, 눌지왕(訥祗王)은 바로 밑의 동생 미사흔(未斯欣)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에 제상(堤上)은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바로 율포(栗浦)-지금의 경북 양남 해안(海岸)-에서 배를 타고 왜국(倭國)으로 떠나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제상(堤上)부인(夫人)통곡(痛哭)을 하며, 망덕사(望德寺)장사(長沙)에 양다리를 퍼뜨리고 일어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일(後日) 사람들이 이곳을 벌지지(伐知旨)라 불렀다고 한다.


효충사 내부. 무너진 바닥이 지자체의 유적에 대한 관심인 것 같아 마음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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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제상(堤上)부인(夫人)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삼고, 그 딸을 미사흔(未斯欣)-미해-의 부인(夫人)으로 삼았다고 한다.
제상(堤上)왜국(倭國)에서 미사흔(未斯欣)탈출(脫出)시키고 붙잡히자, 왜왕(倭王)자신(自身)신하(臣下)로 삼고자 하나, 제상(堤上)은“차라리 계림(鷄林)의 개돼지가 될망정 왜국(倭國)신하(臣下)는 될 수 없으며, 차라리 계림(鷄林)의 매를 맞을지언정 왜국(倭國)의 벼슬과 녹은 받을 수 없다”라며 일언지하(一言之下)거절(拒絶)을 한다.
왜왕(倭王)()하여 제상(堤上)의 발바닥 가죽을 벗기게 하고 갈대를 예리하게 베고는 그 위를 달리게 하는 형벌(刑罰)을 가한다.
이 일을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著者) 일연(一然)스님은“지금도 갈대 위에 피 흔적(痕迹)이 있는 것을 세상(世上)에서는 ‘제상(堤上)의 피’라고 한다.”라고 적고 있다.
아마도 ()나라의 간섭기(干涉期)를 살다간 일연(一然)우회적(迂廻的)으로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적개심(敵愾心)을 나타내면서, 아울러 백성(百姓)들에게 충성심(忠誠心)고취(鼓吹)시키는 이중적(二重的)의미(意味)박제상(朴堤上)충절(忠節)을 얘기 하며, 그 아내와 세 딸들 모두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는 것으로 절개(節槪)를 지키는 하나의 표상(表象)으로 삼으려 한 것이 아닌가 한다.


효충사 영정 탁자. 얼마나 방치를 했는지 먼지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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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효충마을에 있는 효충사(孝忠祀)를 찾아 길을 나섰다.
예상(豫想)은 하였지만 찾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제대로 된 이정표(里程標)도 없을뿐더러 주민(住民)들에게 길을 물어도 고개만 가로 저을 뿐 말이 없다.
자신(自身)의 뿌리에 대한 무관심(無關心)은 곧 애향심(愛鄕心)심각(深刻)하게 무너진다는 평범(平凡)진리(眞理)를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곳을 양산시에서는 대대적(大大的)으로 성역화(聖域化) 한다는 것을 며칠 전 언론(言論)발표(發表)를 하였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대적(大大的)으로 성역화(聖域化)를 하지 않으면, 찾아가는 이정표(里程標)도 만들지 않아야 하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방자치체(地方自治體)의‘내 고장 알리기’의 수준(水準)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효충사 비에 화랑의 세속오계가 올곧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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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차례 길머리를 다시 잡아 겨우 효충사(孝忠祀)에 들렀다.
조그만 건물(建物)하나에 비석(碑石)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건물(建物) 안을 쳐다보니 더욱 기가 막혀 말문이 닫혀져 버린다.
얼마나 방치(放置)를 했는지 영정(影幀)을 모신 탁자(卓子)는 먼지투성이고, 바닥은 무너져 잘못하다간 참배객(參拜客)들이 안전사고(安全事故)라도 일으킬 만 하였다.
영정(影幀) 두 개가 모셔져 있지만 어느 것이 박제상(朴堤上)의 것이고, 어느 것이 방아타령(碓樂)으로 유명한 그 아들 백결선생 것인지 표지(標識)가 없다.
꼭 금싸라기 예산(豫算)을 축내어야만 간단(簡單)청소(淸掃)라도 할 수 있는 지 관계자(關係者)에게 진정(眞情)으로 묻고 싶다.
제발 이제라도 대대적(大大的) 성역화(聖域化)는 그때 가서 하고, 지금 있는 유적(遺蹟)이라도 깨끗하게 유지(維持)하여 찾아오는 탐방객(探訪客)을 맞이해야 되지 않을까.


효충사 내에 있는 박제상과 백결선생 부자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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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각(祭閣) 마당엔 단출한 ()가 하나 덩그렇게 서 있다.
한문학(漢文學)조예(造詣)가 없는 사람도 ()발견(發見)할 수 있는 반가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화랑도(花郞徒)세속오계(世俗五戒)였다.
박제상(朴堤上)과 그 아들 백결선생(百結先生)을 모신 제각(祭閣)()화랑(花郞)세속오계(世俗五戒)가 들어 있을까. 백결선생(百結先生)의 자취를 찾아보면 해답(解答)이 보일성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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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한자
1.季節  2.興奮  3.寒氣  4.花郞  5.新羅  6.萬古  7.忠臣  8.推仰  9.始祖  10.後孫  11.門中  12.無妨  13.識者  14.指目  15.記錄  16.後日  17.王命  18.夫人  19.痛哭  20.脫出  21.自身  22.臣下  23.一言之下  24.拒絶  25.刑罰  26.著者  27.痕迹  28.世上  29.百姓  30.鼓吹  31.意味  32.忠節  33.表象  34.豫想  35.住民  36.平凡  37.眞理  38.言論  39.發表  40.建物  41.碑石  42.放置  43.影幀  44.卓子  45.標識  46.豫算  47.簡單  48.眞情  49.遺蹟  50.維持  51.造詣  52.發見  53.解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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