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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기(兵仗器)를 심산(深山)에 묻은 이유


반짝 반짝 벚꽃 잎이 송이 눈가루마냥 유채꽃위에도 개나리 ․ 진달래위에도 하얗게 쌓이고 있다.
보문(普門)가는 길은 벚꽃터널이 되어, 최고조(最高潮)기분(氣分)에 냅다 괴성(魁星)이라도 내지르고 싶다.
정말 세상(世上)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희망(希望)의 동산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꽃날이 오면 첫사랑이라도 불현듯 나를 찾을 것 같다.
안타깝다.
나의 첫사랑이 첫사랑의 첫사랑이어야 하는데, 기억(記憶)이나 할런지, 가슴에 품은 사랑을 그냥 어루만지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일까? 항상 봄이 오면 먼 언덕 위 아련한 곳에는 첫사랑이 솜털마냥 머물러 있으니 말이다.


무장사지 삼층석탑 안내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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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사(䥐藏寺)를 찾아가는 오늘 아침은 발걸음이 마음을 재촉한다.
수 없이 생각으로만 머물렀던 곳으로의 기행(奇行)은 설렘을 피어오르게 하기에 충분(充分)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문호반(普門湖畔)은 꽃야성을 이루고 있고, 젖먹이 맑은 눈망울에 벚꽃이 한잎 두잎 지고 있다.
이 봄도 이렇게 곧 막을 내릴 것 같아 괜한 심술이 삐죽이 발아래를 휘감는다.
다시 다잡아 조선호텔 앞 거대한 물레방아를 뒤로 하고 작은 소로(小路)로 접어들었다.
개나리가 완연(宛然)하게 속살을 보여준다.
아니 너울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 어울릴 것 같다.
한참이나 뿌연 황사(黃紗) 길을 더듬더듬 들어가니 암곡동(暗谷洞)() 아래 갇힌 듯 옹기종기 있다.


무장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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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노란 꽃비가 내렸다’, ‘흙비(土雨)가 내렸다’는『삼국사기(三國史記)기사(記事)를 보면 황사(黃紗)는 이미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봄마다 우리를 찾아온 귀객(鬼客)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마을을 벗어나 개울 길을 따라 한참이나 들어가자, 무장사지(䥐藏寺址) 2킬로미터란 이정표(里程標)가 놀란 듯 고개를 내민다.
어디를 가나 우리나라 이정표(里程標)란 참 난수표(亂數表) 찾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실감(實感)이 난다.
무장사(䥐藏寺)를 가는 길은 개울물이 계속 호위(護衛)를 해주며 두런두런 이야기로 발길을 이끈다.
길바닥은 온통 굵은 자갈로 되어 있어, 오늘날 참살이를 외치는 선무당 등산객(登山客)에겐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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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五里)이정표(里程標)를 떠올리며 꼬불꼬불 계곡(溪谷)을 얼마나 올랐는지, 몇 번이나 개울물 징검다리를 건넜는지 모를 때 쯤, 깎아지른 벼랑 위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석탑(石塔)하나가 황사운무(黃紗雲霧)에 가려 언뜻 보인다.
놀라운 탄성(歎聲)산하(山河)를 메아리친다.
이곳이 무장사지(䥐藏寺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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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사(䥐藏寺)는 통일신라(統一新羅) 38대 원성대왕(元聖大王, : 785년-798년)의 아버지 되는 대아간(大阿干) 효양(孝讓)-명덕대왕(明德大王)-이 그의 숙부(叔父) 되는 파진찬(波珍湌)추모(追慕)하기 위하여 세운 절이라고 한다.
또한 세간(世間)에서 무열왕(武烈王)삼한(三韓)통일(統一)() 병장기(兵仗器)를 이 골짝 속에 묻었다하여 무장사(䥐藏寺)라 한다고도 한다.


무장사아미타불조성사적비 이수와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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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도 신라(新羅) 39대 소성왕(昭聖王 : 799~800)이 즉위(卽位) 2년 만에 돌아가니 그 왕후(王后) 계화(桂花)부왕(夫王)명복(冥福)을 빌기 위하여 자신(自身)이 입고 있던 화려한 의복(衣服)궁중(宮中)에 쌓아두었던 재물(財物)을 털어 이름난 재인바치들을 소집(召集)하여, 미타상(彌陀像) 등을 조성(造成)하였다고 하는『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記錄)흥미(興味)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얼마나 부왕(夫王)을 잃은 슬픔이 극진(極盡)하였으면, ‘창황스럽고도 지극히 슬퍼하여 피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이 아프던 나머지 살았을 적에 아름다운 행적(行蹟)을 죽어서 드날리고 그의 명복(冥福)을 빛나게 하고자 생각하더니’ 라면서 미타전(彌陁殿)조성(造成)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思夫曲’인 셈이다.
왕후(王后)라고하나 지아비인 ()이 없는 왕실(王室) 생활(生活)이란 독수공방(獨守空房)에 마음은 수 천리 벼랑에 걸린 외론 신세(身世)였을 것이다.


무장사아미타불조성사적비 이수와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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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소성왕(昭聖王)은 무척 어렵고도 좁은 길을 거쳐 왕위(王位)에 오른다.
부왕(父王)원성왕(元聖王) 원년(元年)에 아들 인겸(仁謙)태자(太子)()하나, 7년 정월에 태자(太子)가 죽고 만다.
이에 원성왕(元聖王) 8년 8월에 왕자(王子) 의영(義英)태자(太子)로 삼는다.
그러나 10년 2월 의영(義英)마저 죽게 된다.
하는 수 없이 원성왕(元聖王)은 11년 정월에 혜충태자(惠忠太子)-인겸(仁謙)-의 아들 준옹(俊邕)()하여 태자(太子)로 삼는다.
() 원성왕(元聖王)즉위(卽位) 14년 12월 29일에 붕어(崩御)하여 왕위(王位)에 오른 이가 소성왕(昭聖王)이다.
한 임금이 세 번에 걸쳐 태자(太子)()했다는 사실은 원성왕(元聖王)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또한 소성왕(昭聖王)()나라에 봉사(奉使)하여 대아찬(大阿湌)이 되고, 파진찬(波珍湌)으로 재상(宰相)에 올랐으며, 시중(侍中)병부령(兵部令)을 지낸 후 태자(太子)가 된 독특(獨特)이력(履歷)을 가진 ()인 셈이다.
비록 왕위(王位)에 올라서는 불과 2년을 지내지 못하고 죽게 되었지만, 왕실일원(王室一員)으로서는 세상(世上)부귀영화(富貴榮華)를 다 누린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무장사아미타불조성사적비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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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新羅) 38대 원성왕대(元聖王代)가 되면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실시(實施)하여, 인재(人才)등용(登用)하게 된다.
이 일을『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전일(前日)궁술(弓術)로써 인물(人物)선택(選擇)하더니 이때에 이르러 개혁(改革)하였다’라고 하여 그동안은 궁술(弓術)무예(武藝)중심(中心)으로 인재(人才)선발(選拔)하다가 이후론 문재(文才)중시(重視)하여 등용(登用)하였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www.pjnonsul.com
   먼저 31대 신문왕대(神文王代)김흠돌(金欽突)()으로 화랑(花郞)폐지(廢止)하고, 국학(國學)설치(設置)하여 새로운 청소년(靑少年) 교육기관(敎育機關)을 만들면서 화랑(花郞)들은 중앙정계(中央政界)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원성왕대(元聖王代)에 오면 완전(完全)히 그 자취를 감추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以後) 화랑(花郞)들은 그들의 전통(傳統)유오산수(遊娛山水)를 즐기면서 때론 향가(鄕歌)를 지으며 점차(漸次) 세속(世俗)일정(一定)거리(距離)를 두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지리산 서암정사 불상 부분. 무장사아미타불조성사적비도 처음엔 이것처럼 힘차고 아름다웠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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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대 진성여왕대(眞聖女王代 : 887~897)에 와서 대구화상(大矩和尙)각간위홍(角干魏弘)이『삼대목(三代目)』이라는 향가집(鄕歌集)편찬(編纂)하였다고 하니, 호국무사(護國武士)로서는 잊혀 진 존재(存在)였지만, 화랑(花郞)들의 전통(傳統)향가(鄕歌)는 꾸준히 창작(創作)되어 졌다고 판단(判斷)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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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그렇게 많이 불렀던 향가(鄕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라진 것일까. www.pjnonsul.com
   아니다.
지금 이 순간(瞬間)도 우리네 가슴 속에는 언제나 그렇듯 향가(鄕歌)가 수 없이 창작(創作)되고 또한 부르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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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한자
1.氣分  2.世上  3.希望  4.記憶  5.奇行  6.充分  7.小路  8.宛然  9.記事  10.實感  11.護衛  12.溪谷  13.石塔  14.歎聲  15.山河  16.叔父  17.追慕  18.世間  19.新羅  20.卽位  21.王后  22.冥福  23.自身  24.衣服  25.宮中  26.財物  27.召集  28.造成  29.記錄  30.興味  31.極盡  32.行蹟  33.王室  34.生活  35.身世  36.父王  37.元年  38.太子  39.王子  40.崩御  41.宰相  42.獨特  43.實施  44.人才  45.登用  46.弓術  47.人物  48.選擇  49.改革  50.中心  51.選拔  52.文才  53.花郞  54.廢止  55.國學  56.設置  57.完全  58.傳統  59.鄕歌  60.世俗  61.一定  62.距離  63.編纂  64.存在  65.創作  66.判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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