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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화랑의 노래 <혜성가(彗星歌)>


역시 가을은 비가 살포시 내려 적셔야만 제 모습을 드러내는, 은근(慇懃)한 시골 선비 같은 기풍(氣風)을 간직하여야만 제 맛이 나는 가 보다.
몇 방울도 아니게 비가 내리더니만 이내 온 산하(山河)가 붉음으로 물들어 가고, 동구(洞口)채전(菜田)에는 김장거리가 바다 갯내음 젓갈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차창(車窓)으로 스치는 회백색(灰白色) 토종감나무의 길어진 가지위에 까치 한 마리, 남은 반시(半柿)에 넋을 잃고 있다.


서천 냇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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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慶州) 나들목을 들어서니 길 양옆 가로수(街路樹) 나뭇잎이 울긋불긋 나래를 펼치며 반갑게 두 팔 벌려 환영(歡迎)하고 있다.
갑자기 한 무리의 관광버스가 수학여행(修學旅行) 콧노래로 지나간다.
언제나 그렇듯 서라벌(徐羅伐)의 가을 풍경(風景)질주(疾走)하는 관광버스로 시작(始作)된다고 해도 과언(誇言)이 아니다. www.pjnonsul.com
   경주(慶州) 시내(市內)에 들어서면 먼저 신라시조(新羅始祖)를 모신 오릉(五陵)평지(平地) 넓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 ()이어 영묘사(靈妙寺)-現 興輪寺-터와 흥륜사(興輪寺)-현 경주공업고등학교(慶州工業高等學校)-터가 나타난다.
신라문화원(新羅文化院) 앞 대구로터리에서 좌회전(左回轉)하다가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바로 우회전(右回轉)하면 시원한 서천(西川)냇가로 난 순환도로(循環道路)를 만나게 된다.
길 옆 코스모스는 햇빛에 반사(反射)되어 더욱 가을 향연(饗宴)연출(演出)한다.
그 옛날 신라(新羅) 화랑(花郞)들도 이 길을 가로질러 말을 달렸을 것이다.
()를 멈추고 가만히 코스모스를 가까이서 바라다본다.
한 송이 한 송이 흰색, 핑크빛, 빨간색 꽃잎이 저마다의 자태(姿態)를 뽐내며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넘실넘실 춤을 춘다.
화랑(花郞)들이 그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펼치기 위해 유오산수(遊娛山水)하면서 노닐던 모습을 만나는 것 같아 오랫동안 눈길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www.pjnonsul.com
   여기에서 조금만 가다 보면 주택가 한 귀퉁이에 날렵한 당간지주(幢竿支柱)발견(發見)하게 된다.
아무런 흔적(痕迹) 없이 버려진 터에 남아있는 당간지주(幢竿支柱)는 말 못할 진실(眞實)을 감추고, 오늘도 묵묵(黙黙)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이 신라(新羅) 26대 진평대제(眞平大帝)건립(建立)삼랑사(三郞寺)터이다.


삼랑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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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新羅) 진평대제(眞平大帝) 19년 ‘삼랑사(三郞寺)준성(竣城)되었다’라고 간략(簡略)하게『삼국사기(三國史記)』는 ()하고 있다.
신라(新羅)진평대제(眞平大帝) 때가 되면 본격적(本格的)으로 불교유학(佛敎遊學)을 위해 중화(中華) 땅으로 승려(僧侶)들이 들어가게 된다.
먼저 동왕(同王) 7년 7월에 지명법사(知命法師)-향가(鄕歌) 서동요(薯童謠)배경설화(背景說話)에 두 번 기록(記錄)지명법사(知命法師)로 보인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智明으로『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知命으로 기록(記錄)되어 있다-가 ()나라로 들어가 불법(佛法)()하였고, 11년 3월에는 세속오계(世俗五戒)원광법사(圓光法師)()나라로 가게 된다.
18년 3월에는 고승(高僧) 담육(曇育)()나라에 들어갔고, 22년에는 원광법사(圓光法師)()나라에서 돌아왔다.
또한 24년 9월에는 고승(高僧) 지명(知命)()나라에서 돌아왔다고『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아마도 이때가 되면 그동안 서라벌(徐羅伐) 안에서만 이루어지던 불교(佛敎)가 더 이상의 사상적(思想的) 발전토대(發展土臺)를 잃어버리게 되자, 24대 진흥왕(眞興王)개척(開拓)한강하류(漢江下流)를 통해 수많은 서라벌인(徐羅伐人)들이 중화(中華)구법(求法)여행(旅行)을 떠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을 상징적(象徵的)으로 나타내는 사건(事件)하나가『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記錄)되어 있어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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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평대제(眞平大帝) 9년 7월에 대세(大世)구칠(仇柒)이가 해외(海外)로 달아나 버렸다.
대세는 내물왕(奈勿王)의 7세손이고, 이찬(伊湌) 동대(冬臺)의 아들인데, 자질(資質)준수(俊秀)하여 젊어서부터 방외(方外)-초세간(超世間)-의 뜻을 두었다.
대세(大世)는 “이 좁은 신라(新羅)의 산골 속에 있어서 일생(一生)을 보내면 저 창해(滄海)의 큼과 산림(山林)의 넓음을 알지 못하는 못의 고기나 날짐승과 무엇이 다르랴!” 하고는 구칠(仇柒)과 함께 남해(南海)에서 배를 타고 떠나버렸다고 한다. www.pjnonsul.com
   사실 신라(新羅)한반도(韓半島) 동남부(東南部)위치(位置)지리적(地理的) 여건(與件)으로 인하여, 중화(中華)와의 직접교류(直接交流)항상(恒常) 고구려(高句麗)백제(百濟)에 막혀 이루어지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강력(强力)정복군주(征服君主) 진흥왕(眞興王)백제(百濟)와의 연합(聯合)으로 한강유역(漢江流域)확보(確保)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중화(中華)와의 교류(交流)의 폭이 폭발적(爆發的)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진흥왕(眞興王)손자(孫子) 백정(白淨)이 곧 진평왕(眞平王)이니 이때가 되면 서라벌(徐羅伐) 귀문자제(貴門子弟)들의 중화유학(中華遊學)본격화(本格化)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www.pjnonsul.com
   반도(半島) 동남부(東南部)소국(小國)에서 출발(出發)신라(新羅)는 6세기에 이르면 한강유역(漢江流域)함경도(咸鏡道) 지역(地域)까지 영토(領土)확장(擴張)하게 되고, 또한 화랑도(花郞徒)를 두어 나라의 동량(棟樑)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도(試圖)진흥왕대(眞興王代)시작(始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화랑(花郞)이용(利用)하여 당대(當代)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계획(計劃)본격적(本格的) 실행(實行)은 그 손자(孫子) 진평왕대(眞平王代)에 와서 이루어진다.
진평왕(眞平王)화랑(花郞)들의 신조(信條)세속오계(世俗五戒)원광법사(圓光法師)에게 짓게 하고, 화랑(花郞)들의 전통(傳統)유오산수(游娛山水)적극(積極) 장려(獎勵)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時期)에는 향가(鄕歌)본격적(本格的)으로 불리어 지게 된다.
이런 사회적(社會的) 분위기(雰圍氣)에 힘입은 진평왕(眞平王)삼랑사(三郞寺)를 짖는 등 더욱 더 화랑(花郞)들을 중요시(重要視) 하는 정책(政策)을 펼치게 된다.
이때의 향가(鄕歌)로 알려진 <혜성가(彗星歌)>의 배경설화(背景說話)에 공교롭게도 세 화랑(花郞)들의 풍악(楓嶽) 유람(遊覽) 기사(記事)가 나타나 삼랑사(三郞寺)와의 연관성(聯關性)짐작(斟酌)하게 해 준다.


삼랑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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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째 거열화랑(居烈花郞), 여섯째 실처화랑(實處花郞), 일곱째 보동화랑(寶同花郞)등 3명의 화랑(花郞)금강산(金剛山)으로 유람(遊覽)을 떠나려 하였다.
이때 갑자기 혜성(彗星)이 나타나자 이들은 유람(遊覽)을 그만두려고 하였다.
이에 융천사(融天師)향가(鄕歌) <혜성가(彗星歌)>를 지어 불렀더니 혜성(彗星)괴변(怪變)이 사라지고, 일본군사(日本軍士)도 물러갔다고 한다.
현대어(現代語)로 풀어 불러보면, www.pjnonsul.com
  
예전 동해 물가 건달파가 놀던 성을 바라보고  舊理東尸汀叱乾達婆矣 遊烏隱城叱肹良望良古
‘왜군이 왔다’고 봉화를 사룬 변방이 있어라  倭理叱軍置來叱多 烽燒邪隱邊也藪耶
세 화랑의 산 구경 오심을 듣고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
달도 부지런히 등불을 켜는데   月置八切爾數於將來尸波衣
길 쓸 별을 바라보고   道尸婦尸星利望良古
혜성이여 사뢴 사람이 있구나.   彗星也白反也人是有叱多
아으 달은 저 아래로 떠 갔더라   後句 達阿羅浮去伊叱等邪
이 보아, 무슨 혜성이 있을고.   此也友物北所音叱彗叱只有叱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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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노래에 나오는 건달파(乾達婆)불교문헌(佛敎文獻)을 보면 음악(音樂)관장(管掌)하는 귀신(鬼神)이라고 한다.
지금 건달(乾達)이라는 말은 썩 좋지 아니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로 단어(單語)의미(意味)하락(下落)하였지만, 그래도 정감(?)을 느끼기에 충분(充分)하다고 하면 견강부회(牽强附會)일까? www.pjnonsul.com
   또한 <혜성가(彗星歌)>에는 일본병(日本兵)이 물러갔다고 하는 노랫말이 나타난다.
사실『삼국사기(三國史記)』 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19년 기록(記錄)에 ‘()신라변경(新羅邊境)침범(侵犯)했다’는 기사(記事)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신라침범(新羅侵犯) 기사(記事)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기록(記錄)금관가야(金官伽倻)신라(新羅) 23대 법흥왕(法興王) 19년에 항복(降伏)하게 되고, 24대 진흥왕(眞興王) 23년에 이사부(異斯夫)사다함(斯多含)반란(叛亂)을 일으킨 고령가야(古寧伽倻)평정(平定)하는 기사(記事) 이후(以後)로는 ()신라침범(新羅侵犯) 기사(記事)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史實)이다.
가야(伽倻)멸망(滅亡)과 함께 ()신라침범(新羅侵犯) 기록(記錄)도 자취를 감추니 두 나라 사이의 친연성(親緣性)에 강한 의문(疑問)이 남는다.


풍악으로 유람을 떠난 세 화랑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동해안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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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삼랑사(三朗寺)에는 융천사(融天師)도 세 화랑(花郞)도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웅혼(雄渾)기상(氣像)은 오늘도 서라벌(徐羅伐) 가을 하늘에 응집(凝集)되어,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準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뭉게뭉게 떠있는 흰 구름만이 그 진실(眞實)을 알고, 저렇듯 평화(平和)롭게 오락가락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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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한자
1.慇懃  2.氣風  3.山河  4.菜田  5.歡迎  6.風景  7.疾走  8.始作  9.誇言  10.市內  11.平地  12.反射  13.新羅  14.花郞  15.姿態  16.浩然之氣  17.發見  18.痕迹  19.眞實  20.建立  21.簡略  22.中華  23.僧侶  24.鄕歌  25.記錄  26.佛法  27.高僧  28.知命  29.佛敎  30.開拓  31.事件  32.資質  33.俊秀  34.方外  35.一生  36.山林  37.位置  38.與件  39.恒常  40.强力  41.確保  42.交流  43.孫子  44.半島  45.小國  46.地域  47.擴張  48.試圖  49.當代  50.計劃  51.實行  52.信條  53.傳統  54.積極  55.時期  56.政策  57.楓嶽  58.遊覽  59.記事  60.斟酌  61.彗星  62.怪變  63.管掌  64.鬼神  65.乾達  66.單語  67.意味  68.下落  69.充分  70.牽强附會  71.侵犯  72.史實  73.疑問  74.雄渾  75.平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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