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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조상(塑造像)에 되살아난 양지스님의 <풍요(風謠, 功德歌)>


이젠 잠깐의 화려(華麗)함을 뒤로하고, 쓸쓸히 자연(自然)으로 돌아간 바스락 낙엽(落葉)만이 나름의 운치(韻致)를 하얀 입김으로 날리고 있다.
이때쯤이면 누구나 한번은 바삐 걸어온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고향(故鄕)온돌방(溫突房), 어머님의 지극(至極) 정성(精誠)으로 따뜻한 온기(溫氣)를 내내 간직하고 있는 놋쇠 밥그릇에 대한 추억(追憶) 한 소절이 사무치게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인간(人間)이 바글거리고 사는 이 세상(世上), 그 어떤 예술(藝術)거장(巨匠)들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모성(母性)이 빚은 아름다움 덩어리인 사랑이라는 밥 한 그릇이, 해거름 집으로 돌아가는 발아래 먼발치에서 나를 ()해 손짓을 한다.
첫추위에 움츠린 어깨는 서걱서걱 얼어붙어 있고, 가늘게 북풍(北風)을 피하던 눈가엔 한 방울 이슬이 맺힌다.


동국대 경주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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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장사(錫杖寺)양지(良志)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온통 비에 젖어 있었다.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 경주(慶州)나들목으로 들어서 오릉(五陵) 앞에서 좌회전(左回轉)을 한다.
여기서 200여미터를 가면 천경림(天鏡林) 흥륜사(興輪寺)란 하얀 대리석(大理石) 표지석(標識石)을 만날 수 있다.
천경림(天鏡林) 흥륜사(興輪寺)라면 신라 23대 법흥왕(法興王) 시절, 이차돈(異次頓)불교수용(佛敎受容)이라는 정치(政治) 소용돌이 속에서 과감(果敢)()을 위해 자신(自身)을 던진 유서(由緖) 깊은 곳이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交叉)되었지만, 먼저 석장사(錫杖寺)부터 찾을 요량으로 그냥 ()를 몰았다.
양지(良志)스님이 주석(主席)했던 가람(伽藍)으로 가서 스님의 ()을 만나 예의(禮儀)를 갖추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양지스님의 석장으로 유명한 ‘석장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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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외고속터미널을 지나 조금 가면, 동국대(東國大) 경주(慶州)캠퍼스를 알리는 이정표(里程標)가 보인다.
여기서 좌회전(左回轉)하여 서천강변(西川江邊) 다리를 지나면 동국대(東國大) 부속병원(附屬病院)이 나타나고, 이어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정문(正門) 앞에서 다시 좌측(左側) 길을 따라 가면 울퉁불퉁한 시멘트 길이 ()이어 있다.
이 길이 석장사(錫杖寺)길이다.
약 500여미터를 가면 재실(齋室)이 있고, 바로 위쪽에 있는 저수지(貯水池)를 지나 조금만 가면 신우대-대나무의 일종으로 화살을 만들던 것이었다고 한다.
옛날 일반 백성들은 軍役을 직접 몸으로 때웠지만, 스님들은 그럴 수 없어 화살을 만들어 군역을 대신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폐사지에 가면 어김없이 신우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무리지어 있다.
이곳이 양지(良志)스님의 석장(錫杖)-지팡이-으로 유명한 석장사지(錫杖寺址)이다.


양지스님이 빗은 사천왕사 사천왕상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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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신라(新羅) 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 : 632~646) 시절(時節)이었다.
이때 양지(良志)스님은 석장사지(錫杖寺址)에서 진흙으로 불상(佛像)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새로운 불상제작기법(佛像製作技法) 창안(創案)을 위해 참선(參禪)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판(理判)만이 절 살림을 보증(保證)해 주지는 못하는 법, 사판(事判)으로 나서야만 부처님 공양(供養)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때였다.
평소(平素) 스님과 함께 서라벌(徐羅伐) 골골을 누빈 석장(錫杖)이 저절로 날아가 시주(施主)를 받아 오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서라벌(徐羅伐) 향민(鄕民)들은 이 절을 석장사(錫杖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www.pjnonsul.com
   지난 1986년과 1992년 두 차례 동국대(東國大) 경주(慶州)캠퍼스 박물관(博物館)이 이곳 석장사지(錫杖寺址)발굴조사(發掘調査) 하였다.
결과(結果) 7~8세기(世紀)에 지어졌고, 고려(高麗) 조선시대(朝鮮時代)까지 건물(建物)추가(追加) 건축(建築)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곳에서는 수많은 탑상문전(塔像紋甎)발굴(發掘)되어 전탑(塼塔)존재(存在)했을 가능성(可能性)을 엿보게 하고 있다.


흥륜사지로 추정되는 경주공고 측량기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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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三國遺事)의해(義解) 양지사석조(良志使錫條)에 ‘또 일찍이 벽돌을 조각(彫刻)하여 작은 () 한 개를 만들고, 이와 함께 부처 3,000기를 만들어 그 ()에 모시어 절 가운데 두고 ()를 드렸다’고 양지(良志)스님의 뛰어난 소조상(塑造像) 제작(製作)에 관한 기록(記錄)이 있다.
석장사지(錫杖寺址)발굴(發掘)해본 결과, 수많은 탑상문전과 특히 ‘錫杖’이라는 명문(銘文)수습(收拾)되어 양지(良志)스님이 주석(主席)하였고, 자신(自身)예술혼(藝術魂)을 마음껏 불살랐던 전탑(塼塔)이 있었던 곳이 예가 아닌가 한다. www.pjnonsul.com
   달포 전 동국대(東國大)건학(建學) 100돌 기념전(記念展)의 일환으로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오다 서럽더라 : 풍요(風謠)의 노랫말-라는 소조불(塑造佛)주제(主題)로 한 기획전(企劃展)을 열었다.
양지(良志)스님이 제작(製作)한 듯한 신라(新羅)소조불(塑造佛)고려(高麗)조선시대(朝鮮時代) 소조불(塑造佛) 100여점이 전시(展示)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 본 전시회(展示會)시공(時空)초월(超越)하여 조촐하게 손님을 맞았고, 양지(良志)스님의 예술혼(藝術魂)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탐방자(探訪者)에겐 매우 유익(有益)시간(時間)으로 기억(記憶)된다.


흥륜사로 추정되는 경주공고 뜰에 있는 절집 석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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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덕여왕(善德女王) ()분황사(芬黃寺)영묘사(靈妙寺)가 한두 해 사이에 준성(竣成) 되었고, 또한 자장법사(慈藏法師)()으로 황룡사(黃龍寺) 9층탑을 창건(創建)하는 등 신라(新羅)불국토(佛國土) 건설(建設)본격화(本格化) 되던 시기(時期)였다. www.pjnonsul.com
   소조불(塑造佛)대가(大家) 양지(良志)스님도 왕명(王命)으로 영묘사(靈妙寺) 장륙존상(丈六尊像) 건립(建立)참여(參與)하게 되었다.
양지(良志)스님의 법력(法力)을 익히 들어온 서라벌(徐羅伐) 양민(良民)들은 앞 다투어 이토(泥土)-진흙-를 머리에 이고 날랐다.
35대 경덕왕(景德王) 23년(764), 장륜존상(丈六尊像)을 다시 도금(鍍金)하는데 벼 2만 3천 7백석이 들었다고 하니 장륙존상(丈六尊像)규모(規模)는 쉬이 짐작(斟酌)하고도 남음이 있다.
황룡사(黃龍寺) 9층탑(層塔)건립(建立)당시(當時)이고 보면 장륙존상(丈六尊像)도 역시 거대(巨大)불상(佛像)이었으리라. 가난한 서라벌(徐羅伐) 민초(民草)들에겐 달리 시주(施主)방법(方法)이 있는 것도 아닐 터, 그들은 이토(泥土) 시주(施主)흔쾌(欣快)동참(同參)하여 이승의 고달픔에서 해방(解放)되는 극락(極樂)으로의 환생(還生)염원(念願)하면서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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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오다 오다  來如來如來如
오다 서럽더라   來如哀反多羅
서러운 중생이여   哀反多矣徒良
공덕 닦으러 오다.
  功德修叱如良來如


영묘사로 추정되는 현 흥륜사 마당의 ‘이차돈성사순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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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이 지방 사람들이 방아를 찧거나 힘든 일을 할 때는 다들 이것을 부르는데 이는 대개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라는 일연(一然)스님의 말을 보면, 고려중기(高麗中期) 이후(以後)에도 계속 이 노래는 노동(勞動)고통(苦痛)을 잊게 하고, 행동통일기능(行動統一機能)을 위한 노동요(勞動謠)일종(一種)으로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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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묘사(靈妙寺) 장륙존상(丈六尊像)을 만든 양지(良志)스님은 30대 문무왕(文武王) 시절(時節),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도교(道敎)주술적(呪術的) 비법(秘法)-으로 당군(唐軍)을 물리친 호국사찰(護國寺刹) 사천왕사(四天王寺) 조성(造成)에도 참여(參與)하였던 것 같다.
또한 영묘사(靈妙寺) 사천왕상(四天王像)전탑(塼塔) 기와, 법림사(法林寺)주불삼존(主佛三尊)좌우(左右) 금강신(金剛神) 등 여러 가지 종류(種類)소조상(塑造像)을 만든 것으로『삼국유사(三國遺事)』는 ()하고 있다.


흥륜사에서 발견된 ‘얼굴모양수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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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사천왕사(四天王寺)팔부신장상(八部神將像)-사천왕상(四天王像)일연(一然)스님이 잘못 기록(記錄)한 것이 아닌가 하는 說이 있음-은 양지(良志)스님의 대표작(代表作)으로 현재(現在)까지 남아 있어, 스님의 뛰어난 진흙 빚는 솜씨를 현재 우리가 감상(感想)할 수 있는 천금(千金)기회(機會)를 주고 있다.
또한 문무왕(文武王) 원찰(願刹) 감은사지(感恩寺址) 쌍탑(雙塔) 사리함(舍利函)에 새겨진 사천왕상(四天王像)도 이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양지(良志)스님이 만든 사천왕상(四天王像)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에 하나의 모델이 되었음을 알려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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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양지(良志)스님의 흔적(痕迹)을 찾아 영묘사(靈妙寺)를 찾아 나선다.
향토사학자(鄕土史學者)에 의하면 현재(現在) 흥륜사(興輪寺)신라시대(新羅時代)영묘사(靈妙寺)라고 한다.
왜냐하면 1970년대, () 흥륜사(興輪寺) 뒤편 발굴조사(發掘調査)에서 ‘영묘(靈妙)’란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와를 수습(收拾)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삼국유사(三國遺事)』에 사천미(沙川尾) 영묘사(靈妙寺)라 하여 () 오릉(五陵) 북편, 남천(南川) 끝자락에 있는 이곳이 영묘사(靈妙寺)가 있던 곳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농토(農土)()해 그날의 물줄기를 정확(正確)하게 파악(把握)하기는 힘들지만, 천경림(天鏡林) 흥륜사(興輪寺)비정(比定)하는 () 경주공업고등학교(慶州工業高等學校) 운동장(運動場) 정지작업(整地作業)을 할 때, 수많은 절집 석재(石材)가 흩어져 있었다는 증언(證言)과 ‘미추왕릉(味鄒王陵)흥륜사(興輪寺) 동쪽에 있다’는『삼국유사(三國遺事)기록(記錄) 등을 종합(綜合)해보면 향토사학자(鄕土史學者)들이 주장(主張)하는 논리(論理)수긍(首肯)이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www.pjnonsul.com
   영묘사(靈妙寺)추정(推定)하는 현 흥륜사(興輪寺) 마당엔 이차돈(異次頓) 성사(聖師) 순교비(殉敎碑)가 새롭게 건립(建立)되어 날렵하게 하늘을 찌를 듯 곧추 서 있다.
영묘사(靈妙寺)이던 흥륜사(興輪寺)이던 초기(初期) 신라(新羅) 불교(佛敎)성지(聖地)임은 틀림없다 하겠다.


반월성이 겨울을 맞아 수많은 전설을 바람에 날리고 있다. (앞 쪽 석재가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다리인 월정교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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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줄기 바람이 일어난다.
차갑다.
어디서 진흙을 이고 오는 서라벌(徐羅伐) 여인네가 보인다.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입가엔 커다란 미소(微笑)가 아름답다.
1934년 이곳에서 발견(發見)신라인(新羅人)미소(微笑)인 얼굴모양수막새(人面圓瓦當)의 환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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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한자
1.華麗  2.自然  3.韻致  4.故鄕  5.至極  6.精誠  7.追憶  8.人間  9.世上  10.藝術  11.巨匠  12.政治  13.果敢  14.自身  15.由緖  16.交叉  17.主席  18.左側  19.新羅  20.佛像  21.創案  22.參禪  23.保證  24.供養  25.平素  26.施主  27.鄕民  28.結果  29.世紀  30.高麗  31.建物  32.追加  33.建築  34.發掘  35.存在  36.製作  37.記錄  38.收拾  39.風謠  40.主題  41.展示  42.超越  43.記憶  44.建設  45.時期  46.大家  47.王命  48.建立  49.參與  50.良民  51.規模  52.斟酌  53.方法  54.欣快  55.同參  56.解放  57.極樂  58.還生  59.苦痛  60.一種  61.道敎  62.秘法  63.造成  64.左右  65.種類  66.現在  67.感想  68.機會  69.痕迹  70.農土  71.把握  72.石材  73.證言  74.綜合  75.主張  76.首肯  77.推定  78.初期  79.佛敎  80.聖地  81.微笑  82.發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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