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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랑의 단석(斷石)


달리는 차장가로 스치는 감나무엔 이미 대롱대롱 높아만 가는 바알간 감들이 애처롭게 매달려 있다.
골짜기 구불구불 이어진 논은 벌써 추수(秋收)가 끝나고, 동네어귀 배추 ․ 무밭에는 싱싱한 김장거리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계속 푸르게 겨울을 맞이할 것 같던 단풍(丹楓)잎이 가을 햇살에 아름다운 운무(雲霧)가 되어 탐방객(探訪客)유혹(誘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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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 건천 나들목으로 나와 청도 방향(方向)으로 내달린다.
시원한 산곡(山谷)풍경(風景)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할 만큼 수려(秀麗)하다.
이윽고 어디선가 화랑(花郞)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날 유신랑(庾信郞)중악석굴(中嶽石窟)에서 얻은 보검(寶劍)을 품고, 이곳을 가로질러 무예(武藝)시험(試驗)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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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우징곡(雨徵谷)-우중골- 동네 입구(入口)간이(簡易) 주차장(駐車場)을 마련해 놓은 것을 보니, 이곳을 찾는 탐방객(探訪客)들을 위한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심성(心性)이 한가득 밀려온다.
마을은 상수도(上水道) 공사(工事)입구(入口)부터 포크래인이 가로막아 더 이상의 차량진입(車輛進入)불가(不可)하다고 알려준다.
차량(車輛)주차장(駐車場)에 두고 마을을 가로질러 단석산(斷石山)으로 ()했다.
불과 2킬로 남짓한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으로 가는 산행(山行) 길은 제법 가파르다.
숨이 날숨들숨하면서 도착한 신선사(神仙寺)는 옛 모습을 추측(推測)하기가 어렵게 말끔히 단장(端裝)되어 있다.
본존불(本尊佛) 앞에 놓여있는 불전함(佛殿函)오후(午後)의 나른함이 비추고 있어 찾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곳을 지나 나무로 만든 간이(簡易) 다리를 따라 돌아가면 거대(巨大)한 바위가 하늘을 찌를 듯 곧추서 있다.
여기가 유신랑(庾信郞)중악석굴(中嶽石窟)에서 얻은 보검(寶劍)시험(試驗)하고자 내리쳐 잘려진 단석(斷石)이다.


단석산 신선사가 가을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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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신라(新羅) 26대 진평대제(眞平大帝 : 579~632) 시절(時節), 15세에 화랑(花郞)이 된 유신랑(庾信郞)은 17세에 고구려(高句麗)백제(百濟)말갈(靺鞨)국경(國境)침범(侵犯)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평정(平正)할 뜻을 품었다.
혼자 중악석굴(中嶽石窟)-대구광역시 팔공산으로 보는 ()과 청도군 오례산으로 비정(比定)하는 ()이 있다-에 들어가 재계(齋戒)하고 하늘에 ()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4일째 되는 날 갈의(葛衣)를 입은 노인(老人)이 나타났다.
이에 유신랑(庾信郞)은 여러 차례 노인(老人)에게 비법(秘法)()해줄 것을 간청(懇請)하게 된다.
짐짓 딴청을 부리던 노인(老人)을 드디어 유신랑(庾信郞)에게 비법(秘法)을 주면서 “그대는 아직 어린데 삼국(三國)병합(倂合)할 마음을 가졌으니 장한 일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오색(五色)찬란(燦爛)한 빛으로 사라졌다.


유신랑이 단칼에 잘랐다는 단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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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해 적병(賊兵)이 점점 침범(侵犯)해오니, 유신랑(庾信郞)은 혼자 중악석굴(中嶽石窟)에서 얻은 보검(寶劍)을 들고 인박산(咽薄山)-현 백운산-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서, ()을 피우며 하늘에 ()하고 기원(祈願)하기를 마치 중악(中嶽)에서 하듯이 빌었더니, 천관신(天官神)이 빛을 내려 보검(寶劍)신령(神靈)스러운 기운(氣運)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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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보검(寶劍)을 가지고 유신랑(庾信郞)단석산(斷石山)-月生山이라고도 함-으로 들어가, 칼을 갈면서 삼국(三國)평정(平正)할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하루는 단석산(斷石山) 8부 능선(稜線)에 있는 거대(巨大)한 바위 앞에 서서 천관신(天官神)영기(靈氣)를 받은 보검(寶劍)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827미터의 단석산(斷石山)이 숨을 죽이며 가늘게 떨고 있었고, 지상(地上)에 있는 뭇 짐승들과 하늘의 날짐승들도 미동(微動)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화산(火山) 폭발(爆發)과 같은 포효(咆哮)와 함께 유신랑(庾信郞)은 번쩍이는 보검(寶劍)을 바위에 내리찍었다.
순간 태초(太初)에 하늘이 열리던 것과 같이 신이(神異)기운(氣運)이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바위가 수직(垂直)으로 갈라졌다.
이윽고 유신랑(庾信郞)은 말을 달려 전쟁터로 나아가 삼한(三韓)통합(統合)하고, 우리 역사상(歷史上) 몇 안 되는 명장(名將)반열(班列)에 오르게 된 것이다.
또한 후일(後日)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推尊)되어 지금도 숭앙(崇仰)을 받고 있다.


흥무대왕 김유신 장군이 잠들어 있는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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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랑(庾信郞)보검(寶劍)으로 내리친 단석(斷石)수직(垂直) 벽엔 여래입상(如來立像)이 넷,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하나, 보살입상(菩薩立像)이 하나, 인물상(人物像)이 둘 새겨져 있다.
() 인물상(人物像)을 보면 신라(新羅)관모절풍(冠帽節風)을 쓰고 긴 저고리에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있다.
연구자(硏究者)에 의하면 이 복식(服飾)이차돈(異次頓) 순교비(殉敎碑)복식(服飾)이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불상(佛像)을 새긴 시기(時期)이차돈(異次頓)순교(殉敎)() 크게 오래지 않은 때인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신라(新羅) 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 654~661()가 되면 이미 ()나라 복식(服飾)영향(影響)을 받아 당풍(唐風)으로 관복(官服)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관모절풍을 쓴 인물상이 단석에 양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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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랑(庾信郞)명산대천(名山大川)으로 유람(遊覽)하면서 삼한병합(三韓倂合)기운(氣運)을 받은 때가 신라(新羅) 26대 진평왕(眞平王) 시절(時節)이다.
진평왕(眞平王)이 누구인가. 향가(鄕歌) 혜성가(彗星歌)의 세 화랑(花郞)금강산(金剛山)으로 유람(遊覽)을 보내기도 하고, 삼랑사(三郞寺)준성(竣成)하여 화랑(花郞)들에게 그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마음껏 펼치게 한 군주(君主)였던 것이다.
결국 신라(新羅)삼국통일(三國統一)을 이룩하는 밑바탕에는 진평왕(眞平王)화랑(花郞)사랑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할 수 있다.
53년간 재위(在位)하면서 수많은 전쟁(戰爭)을 겪었지만, 미래(未來)서라벌(徐羅伐) 젊은 화랑(花郞)들에게 있다는 확신(確信)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準備)하였다고 판단(判斷)된다.


단석에 새겨진 마애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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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단석(斷石)은 아마도 불교(佛敎)서라벌(徐羅伐)에 들어오기 이전(以前)부터 신성시 되던 곳이었을 것이다.
그 뒤 화랑들의 주요 수련처(修練處)로써 기능(技能)수행(隨行)하다가, 이때에 이르러 유신랑(庾信郞)전설(傳說)결부(結付)되어 오늘날 우리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www.pjnonsul.com
   지금도 서라벌(徐羅伐) 곳곳에 산재(散在)한 절집에 가보면, 대웅전(大雄殿) 뒤편 높은 곳이나 암벽(岩壁)이 있는 곳에는 예외(例外) 없이 ‘칠성각(七星閣)’이나 ‘삼성각(三聖閣)’이 있다.
칠성(七聲)이란 불교(佛敎)가 이 땅에 들어오기 이전 당대(當代) 사람들에겐 숭배(崇拜)대상(對象)이었을 것이고, 삼성(三聖) 역시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 등 고조선(古朝鮮)건국(建國)한 세 명의 성인(聖人)을 말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는 데서 판단(判斷)되듯이 신불습합(神佛習合)흔적(痕迹)으로 보는 것이 타당(妥當)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석에 새긴 마애불상의 위엄이 유신랑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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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곳 단석(斷石)에 새겨진 불상(佛像)들도 초기(初期) 신라(新羅) 불교(佛敎)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事例)이면서 또한 유신랑(庾信郞)중악(中嶽)에서 갈의(葛衣)를 입은 노인(老人)에게 비법(秘法)전수(傳受) 받고, 그곳에서 얻은 보검(寶劍)을 갈아 시험(試驗)을 한 흔적(痕迹)이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서라벌(徐羅伐) 불교(佛敎) 성지(聖地)에서 화랑(花郞) 유신랑(庾信郞)고도(高度)수준(水準) 높은 수련(修練)을 하였다고 판단(判斷)된다.
이런 일련(一連)수련과정(修練課程)에서 불승(佛僧)비법(秘法)을 배워 무예(武藝)가 한층 높아졌고, 뒤이어 삼한(三韓)평정(平正)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www.pjnonsul.com
   단석(斷石) 사이로 난 바위틈에 가만히 앉아 본다.
서늘한 기운(氣運)이 아직도 품어져 나오는 것 같다.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우징곡(雨徵谷)을 따라 단석(斷石)을 휘감으며 하늘 높이 사라진다.
서라벌(徐羅伐) 화랑(花郞)들의 올곧은 충심(忠心)이 이곳에서 출발(出發)하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속 저편에서 피어오르는 경외심(敬畏心)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김유신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 ‘재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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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석산(斷石山)을 내려오는 길은 가을 햇살이 앞길을 인도(引導)하고, 부쩍 살찐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먹거리 준비(準備)에 오솔길을 이리저리 가로지른다.
초롱한 눈망울이 더없이 맑아 보인다.
아마 유신랑(庾信郞)이 이곳에서 홀로 수련(修鍊)할 때, 몰래 지켜본 다람쥐가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鎭靜)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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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한자
1.秋收  2.丹楓  3.雲霧  4.誘惑  5.方向  6.山谷  7.風景  8.錦繡江山  9.秀麗  10.花郞  11.寶劍  12.試驗  13.入口  14.心性  15.工事  16.山行  17.推測  18.午後  19.新羅  20.國境  21.侵犯  22.悲憤慷慨  23.秘法  24.懇請  25.五色  26.賊兵  27.祈願  28.神靈  29.氣運  30.地上  31.微動  32.火山  33.爆發  34.咆哮  35.神異  36.垂直  37.統合  38.名將  39.後日  40.崇仰  41.佛像  42.時期  43.影響  44.名山大川  45.遊覽  46.鄕歌  47.浩然之氣  48.君主  49.在位  50.戰爭  51.確信  52.判斷  53.佛敎  54.技能  55.隨行  56.傳說  57.結付  58.散在  59.當代  60.崇拜  61.對象  62.建國  63.聖人  64.痕迹  65.妥當  66.初期  67.事例  68.傳受  69.聖地  70.高度  71.忠心  72.引導  73.修鍊  74.鎭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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