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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떼를 감화시킨 영재의 <우적가(遇賊歌)>


소한추위가 엄습(掩襲)하여 온 대지(大地)가 꽁꽁 얼어붙어 있다.
겨우내 그래도 푸름을 간직하던 침엽수(針葉樹) 역시 북풍한설(北風寒雪)대책(對策) 없이 온 몸을 파리하게 떨고 있다.
차창(車窓) 밖으로 보이는 실개천 맑은 물도 흐르기를 멈추고, 얼음 속에서 찬바람을 피하고 있다.
어디선가 황진이(黃眞伊)의 외론 시조(時調) 한 수가 나그네를 희망지게 한다.


울주군 언양읍 석남사 갈림길에서 본 대현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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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 사랑하는 님 오시는 밤 굽이굽이 펴리라.’ www.pjnons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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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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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또 어느 날 멀리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면 서둘러 봇짐을 둘러매고 왔던 길을 가버리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었던가. 기다림이란 다가서기의 한 형태(形態)일 것이다.
끝내 속내는 말 못하고 그냥 받아들이고 마는 한갓 미물(微物)이 또한 인간(人間)이 아니던가. www.pjnonsul.com
   누군가 낮은 데로 임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시인(詩人) 김수영(金洙暎 : 1921~1968)은 이렇게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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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 www.pjnonsul.com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www.pjnonsul.com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www.pjnons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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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이 오면 때때옷 입고, 맑은 마음으로 짚신 신고, 삼태기 가득 향가(鄕歌)흔적(痕迹)을 지고, 다시 서라벌(徐羅伐) 골골을 청려장(靑藜杖)으로 마음껏 걸어가리라. www.pjnonsul.com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 서울산(西蔚山)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언양읍내(彦陽邑內)를 가로 흐르는 강변도로(江邊道路)를 내달린다.
도로 양옆은 장날을 맞아 온갖 노천시장(露天市長)이 자리를 잡고 있고, 조그만 장터는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반가운 인사로 왁자지껄 하다.
뻥튀기기가 하얀 연무(煙霧)를 뿜으면 우르르 달려가서 한 움큼씩 집어 먹던 그 옛날이 오늘은 여기서 재현(再現)되고 있다.
기행(紀行)의 참 즐거움은 우연히 마주치는 장날이라고 할 수 있다.
소머리 국밥을 50년 전통(傳統) 원조집에서 한 그릇 비웠다.


대현령 고개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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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도로(江邊道路)를 따라 석남사(石南寺) 방향(方向)으로 길머리를 잡는다.
일요일치고는 너무 도로(道路)한산(閑散)하다.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엔 휑하니 거친 바람만이 나뒹굴며 나그네를 바라본다.
간간히 마주치는 아지매들도 수건(手巾)으로 온통 얼굴을 가려 히잡을 두른 이슬람 여인네를 보는 듯하다. www.pjnonsul.com
   왼쪽은 석남사(石南寺), 오른쪽은 경주(慶州)라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차를 세워 놓고 정면(正面)을 바라보면 희멀건 산 사이로 난 고갯길이 아스라이 다가온다.
지금 탐방자(探訪者)가 서 있는 곳은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울주군이다.
멀리 보이는 고개를 넘으면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다.
천 년 전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때는 여기도 상당히 깊은 골짜기였을 것이다.
고개를 넘으면 신라(新羅) 황도(皇都) 서라벌(徐羅伐) 턱 밑이니, 사방(四方)도적(盜賊)떼가 득시글하였을 것 같다. www.pjnonsul.com
   때는 신라(新羅) 38대 원성왕시절(元聖王時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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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天性)활달(豁達)하고 재물(財物)에 얽매이지 않으며 또한 향가(鄕歌)를 잘 지었던 영재(永才)란 스님이 있었다.
세월(歲月)은 흘러 서산(西山)에 해지는 나이가 되자 영재(永才)는 모든 세파(世波)를 뒤로하고 남악(男岳)-지리산(智異山)으로 추정(推定)-에 들어가 향가(鄕歌)나 읊으면서 ()을 마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아니 후일(後日)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 : 857~?)도 지리산(智異山) 산신(山神)이 되었다고 하니, 이미 이때 영재(永才)가 그러한 생각으로 지리산(智異山)을 찾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서라벌(徐羅伐)출발(出發)영재(永才)무열왕릉(武烈王陵)을 지나 소태(牛峴)고개를 넘어 모량리(牟梁里) 화천마을을 가로질러 방내리에서 ()으로 올랐을 것이다.
이윽고 단석산(斷石山)도착(到着)영재(永才)유신랑(庾信郞)단석(斷石)으로 잘려진 단석산(斷石山) 화랑(花郞)들의 성지(聖地)에서 오랜만에 화려(華麗)했던 과거(過去)와 만남을 가지면서 다시금 온 골짜기에 울려 퍼졌던 향가(鄕歌)를 한 소절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잊혀져가는 천년신라(千年新羅)의 노래 향가(鄕歌)를 부여잡고 회한(悔恨)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 같다.


울산시 상북면 덕현리와 경북 경주시 산내면 경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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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터벅터벅 우중골을 지나 현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에 다다랐을 때였다.
갑자기 천둥소리처럼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더니 험상궂은 산적(山賊) 60여명이 시퍼런 칼날로 영재(永才)를 에워싸고 있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줄행랑을 칠 것도 같은데 영재(永才)는 입가에 미소(微笑)만 가득하였다.
놀란 것은 오히려 도적(盜賊)들이었다.
예사 사람이 아님을 짐작(斟酌)도적(盜賊)들은 조심스럽게 존함(尊啣)을 물었다.
“나는 영재(永才)이니라” 하니 도적(盜賊)들은 더욱 놀라는 낯빛을 하였다.
향가(鄕歌) 잘하기로 서라벌(徐羅伐)파다(播多)한 영재스님이란 것을 알아차린 도적(盜賊)들은 그에게 향가(鄕歌) 한수를 지어달라고 애원(哀願)하였다.
향가(鄕歌)천지귀신(天地鬼神)감동(感動)한다는 노래가 아닌가. 아무리 도적(盜賊)이라고 하지만 수많은 이적(異蹟)을 보인 향가(鄕歌)주술성(呪術性)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에 영재(永才)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예의 웃음 띤 온화(溫和)한 얼굴로 향가(鄕歌)를 불렀다.
현대어(現代語)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www.pjnonsul.com
  
제 마음에 형상을 모르려던 날   自矣心米皃史毛達只將來呑隱日
멀리 ○○ 지나치고   遠烏逸○○過去知遣
이제는 숨어서 가고 있네   今呑藪未去遣省如
오직 그릇된 파계주를   但非乎隱焉破○主
두려워할 짓에 다시 또 돌아가리   次弗○史內於都還於尸朗也
이 쟁기를 사 지내곤   此兵物叱沙過乎
좋은 날이 새리이니   好尸日沙也內乎呑尼
아으 이 요만한 선은   阿耶 唯只伊吾音之叱恨隱㵛陵隱
아니 새 집이 되니이다.
  安支尙宅都乎隱以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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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를 마치자 도적(盜賊)들은 고마움의 표시(表示)로 비단 두 필을 공손(恭遜)하게 바쳤다.
그러자 영재(永才)는 손사래를 치며 웃으면서 가만가만 말하였다.
재물(財物)지옥(地獄)근본(根本)이 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피하여 깊은 산에 숨어 일생(一生)을 보내려 하는 사람인데, 어찌 감히 이것을 받겠는가?”하면서 비단을 멀리 던져 버렸다.
이런 영재(永才)행동(行動)도적(盜賊)들은 그만 눈물을 흘리면서 신주(神主)처럼 모시던 창과 칼을 던져버리고 앞 다투어 머리를 깎고 영재(永才)제자(弟子)가 되었다고『삼국유사(三國遺事)피은(避隱) 영재우적조(永才遇賊條)()하고 있다.


영재스님도 이 계곡을 따라 남악으로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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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광역시 상북면 덕현리에서 경주쪽으로 몇 발짝 가면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을 알리는 대리석(大理石) 입간판(立看板)영재(永才)스님 마냥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그 옆에 엉성한 팔각정(八角亭)과 나무로 만든 의자 몇 개가 단출하게 겨울바람을 맞고 있다.
바람이 제법 세차게 얼굴을 파고든다.
이곳을 영재(永才)스님이 넘던 대현령(大峴嶺)으로 보는 이유(理由)간단(簡單)하다.
현재(現在) 지명(地名)이 울주군 쪽이 덕현리이고, 경주시 쪽이 대현리이니 이렇게 비정(比定)해 보고 싶다.
또한 도적(盜賊)떼가 쉽게 한 건을 하려면 서라벌(徐羅伐) 지척(咫尺)에 있는 험준(險峻)한 고갯길을 골라서 ()을 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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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쉬어가는 것도 또 하나의 노정(路程)이 아닌가 한다.
바쁜 마음만이 자꾸 발길을 이끌고 있지, 세상(世上)은 그저 오늘도 그냥 하루이기만 하다.
그러나 천 년 전 온 서라벌(徐羅伐)에 가득하였을 향가(鄕歌)의 발자취를 찾는 기행(紀行)은 언제나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서라벌(徐羅伐) 골목마다 그날처럼 향가(鄕歌)왕성(旺盛)히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그날은 올 것이다.
반드시 오리란 희망(希望)이 꽁꽁 언 냇물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며 미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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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한자
1.大地  2.對策  3.形態  4.微物  5.人間  6.詩人  7.鄕歌  8.痕迹  9.再現  10.紀行  11.傳統  12.方向  13.道路  14.閑散  15.手巾  16.新羅  17.皇都  18.盜賊  19.天性  20.豁達  21.財物  22.世波  23.推定  24.後日  25.山神  26.到着  27.花郞  28.聖地  29.華麗  30.過去  31.悔恨  32.山賊  33.微笑  34.斟酌  35.尊啣  36.哀願  37.感動  38.異蹟  39.溫和  40.表示  41.恭遜  42.地獄  43.根本  44.一生  45.行動  46.神主  47.弟子  48.簡單  49.現在  50.地名  51.咫尺  52.險峻  53.世上  54.希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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