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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교감한 신충(信忠)의 잣나무


입춘(立春)이 지나자 벌써 서설(瑞雪) 속에서 매화(梅花)암향(暗香)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매화(梅花) 사랑에는 조선조(朝鮮朝) 퇴계(退溪) 이황(李滉 : 1501~1570)이 백미(白眉)일 것이다.
그는 얼마나 매화(梅花)를 사랑하였으면 죽음을 목전(目前)에 두고 유언(遺言)으로 던지는 말이 “매화(梅花)에 물 주어라”였겠는가.


단속사지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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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자연(自然)과의 교감(交感)으로 유명(有名)신충(信忠)이의 흔적(痕迹)을 찾으러 경남 산청으로 발길을 내딛고 있다.
경남 산청군 소재지에서 곶감으로 유명(有名)한 덕산방면(德山方面으로 가다, 칠정 조금 못미처 오른쪽으로 작은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이곳 입구(入口)다물민족학교(多勿民族學校)간판(看板)이 세워져 있다.
이곳을 따라가면 탑동마을이 나온다.
마을이름에서 이미 이곳이 단속사지(斷俗寺址) 3층탑(層塔)이 있는 곳이란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마을 입구(入口)를 들어서면 오른쪽 언덕위에 날렵한 당간지주(幢竿支柱)가 하늘을 찌를 듯 곧추서 있다.
여기서 10여 미터를 가면 오른쪽으로 난 좁을 길을 들어서면 바로 단속사지(斷俗寺址) 3층 쌍탑(雙塔)천년(千年)의 이끼에 쌓여 오늘도 탐방객(探訪客)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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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신라(新羅) 34대 효성왕(孝成王)이 아직 왕위(王位)에 오르기 ()이었다.
() 중경(重慶)부왕(父王)성덕왕(聖德王) 14년 12월에 태자(太子)()해졌으나, 동왕(同王) 16년 6월에 죽는다.
이에 아버지 성덕왕(聖德王)은 23년 봄에 둘째 왕자(王子)승경(承慶)태자(太子)()하니, 이가 효성왕(孝成王)이다.
이후 13년이 지나 성덕왕(聖德王)()하니 왕위(王位)에 오르게 된다.
아버지가 36년간이나 왕위(王位)에 있었으니 아무리 둘째 왕자(王子)라고는 하나 나이가 상당(相當)하였다고 판단(判斷)된다.
또한 효성왕(孝成王)즉위(卽位) 6년 만에 돌아가니 더욱 사실인 것 같다.
아마 효성왕(孝成王)신충(信忠)인연(因緣)은 오랜 왕자(王子), 태자(太子)시절(時節)을 보낼 때인 것으로 보인다. www.pjnonsul.com
   하루는 왕자(王子) 승경(承慶)-후일(後日) 효성왕(孝成王)-이 신충(信忠)과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면서 “내가 보위(寶位)에 오르면 너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約束)을 한다.
그러나 왕위(王位)에 오른 효성왕(孝成王)공신(功臣)책봉(冊封)할 때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오랜 기다림과 설움으로 신충(信忠)은 그날 약속(約束)을 지켜본 잣나무를 어루만지며 자신의 속내를 잣나무에 부쳐 읊었다.
현대어(現代語)로 불러보면, www.pjnonsul.com
  
한창 무성한 잣나무   物叱好支栢史
가을이 되어도 이울지 않으니   秋察尸不冬爾屋攴墮米
너를 어찌 잊으랴 하신   汝於多攴行齊敎因隱
우러르던 그 낯이 변하실 줄이야   仰頓隱面矣改衣賜乎隱冬矣也
달그림자 내린 연못가   月羅理影攴古理因淵之叱
흐르는 물결에 모래가 일렁이듯   行尸浪阿叱沙矣以攴如攴
모습이야 바라보지만   皃史沙叱望阿乃
세상 모든 것 여읜 처지여!   世理都之叱逸烏隱苐也
(마지막 구절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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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를 마친 신충(信忠)은 이 향가(鄕歌)를 적어 잣 가지에 붙였더니 그만 잣나무가 말라버렸다.
소문(所聞)서라벌(徐羅伐)에 퍼져 곧 효성왕(孝成王)-동왕(同王) 3년-의 귀에 들어가자, 효성왕(孝成王)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그에게 중시(中侍)라는 벼슬을 내리니 곧 잣나무가 다시 푸르름으로 돌아왔다고『삼국유사(三國遺事)』는 ()하고 있다.


단속사지 동서쌍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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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검은 동물(動物)배신(背信)을 한다.’고 한다.
인간(人間)이 아무리 제잘 난 맛에 산다고 해도 의리(義理)배신(背信)하면 침묵(沈黙)자연(自然)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음을 향가(鄕歌) <원가(怨歌)>는 일깨워 주고 있다고 하겠다.
지금 나라는 온통 배신(背信) 얘기로 들끓고 있다.
만년(萬年) 영원(永遠)할 것 같이 온 국민(國民) 앞에서 맹서(盟誓)하며 웃는 얼굴로 서로 손을 맞잡던 것이 얼마나 지났는지, 벌써 온갖 저잣거리 상말이 난무하고 있다.
이태 전 어느 CF에서 한말이 기억난다.
“줘도 못 먹나?” www.pjnonsul.com
   이곳 단속사(斷俗寺)원래(元來) 금계사(錦溪寺)였다고 한다.
시냇물처럼 수많은 신도(信徒)에 몸살을 앓던 지주가 금강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에서 온 도승(道僧)에게 어떻게 하면 신도(信徒)들이 적게 올 수 있을까라고 묻자 그 도승(道僧)은 절 이름을 ‘단속사(斷俗寺)-속세(俗世)를 끊어 버린 절-’로 바꾸라고 한다.
절 이름을 바꾸자 정말 신도(信徒)들의 발길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속사(斷俗寺)는 불에 타 ()했다는 이야기가 회자(膾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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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단속사지(斷俗寺址) 뒤편에는 약 630년 된 매화(梅花)나무가 있다.
물론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 1915 ∼ 2000)의 동백꽃으로 유명(有名)고창(高敞)선운사(禪雲寺)에도 수령(樹齡) 약 600년의 매화(梅花)나무가 한 그루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리학(性理學)정수(精髓)를 느끼게 해주는 매화(梅花)는 이곳의 정당매(政堂梅)가 아닌가 한다.
정당매(政堂梅)는 진주사람 통정공(通亭公) 강회백(姜淮伯 : 1357-1402)선생과 통계공(通溪公) 회중(淮仲 : 1360-1421) 형제(兄弟)유년(幼年)시절(時節) 이곳 단속사(斷俗寺)에서 공부(工夫)하던 시절(時節) 심은 매화(梅花)라고 한다.
그 후 통정선생(通亭先生)의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고 하여 후대인(後代人)들과 승려(僧侶)들로 부터 정당매(政堂梅)로 불러졌다고 한다.


남명 조식선생의 한시비. 단속사지 입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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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리(義理)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重要)한 삶의 덕목(德目)의 하나인 것이 사실일 것이다.
시끄러운 판을 떠나 속세(俗世)를 끊는 심정(心情)으로 단속사지(斷俗寺址)에 가서 정당매(政堂梅)암향(暗香)이라도 한 번씩 맡고 오는 것이 상말 기자회견(記者會見)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란 충고(忠告)를 해주고 싶다. www.pjnons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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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한자
1.白眉  2.目前  3.自然  4.交感  5.痕迹  6.入口  7.看板  8.新羅  9.父王  10.太子  11.王子  12.相當  13.判斷  14.卽位  15.因緣  16.後日  17.約束  18.功臣  19.冊封  20.鄕歌  21.所聞  22.動物  23.背信  24.人間  25.義理  26.萬年  27.盟誓  28.元來  29.信徒  30.膾炙  31.精髓  32.兄弟  33.幼年  34.僧侶  35.重要  36.心情  37.忠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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